1215 외모 묘사 타입 /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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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 그레이브스는 불행을 몰고 다닌다. 그건 달리 말하면 제나의 인생이 불행으로 얼룩졌다는 뜻이다. 가끔은 가까이서, 또 가끔은 멀리서. 아이작 콜버트는 그 삶의 불행을 지켜본 한 명의 증인으로서 낱낱이 증언할 수 있었다. 이름을 닮은 생애에 즐비한 잿빛 묘비와 메마른 무덤, 매캐한 죽음을. 

 

그는 삶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무도하게 가혹하다는 걸 자신을 일례로 충분히 배웠으나, 그럼에도 그 애를 볼 때면 유난히 삶이 야속할 때가 있었다. 그때는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한 원망이었다.

 

하나 이름이 없다고 존재도 사라지는가. 아이작은 손안에서 빨라지는 맥박을, 그런데도 창백하게 질린 흰 얼굴을, 엎지른 포도주처럼 얼굴 위로 망연히 흘러내리던 머리카락을, 투명한 물방울을 담아둔 것 같던 눈동자를, 그래서 평소보다 맑고 흐릿하던 청록색을, 외로움의 늪으로 가라앉으면서도 몸부림 한번 치지 않던 얌전한 손가락들과 그 구부러진 끝이 만들어 낸 성긴 고리를 알고 있다. ‘괜찮아요.’ 속삭이던 조엘과 필리스를 말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어 끌어안고 괜찮다고 연거푸 약속하고 싶었던 마음이 거기 있었고 그 마음의 이름을 아직 알지 못해서

 

“한 번으로 끝내. 필요하면 내 이름 팔아.”

 

이름을 팔았다.

 

술 냄새와 헷갈릴 만큼 짙은 약품의 잔향, 손과 뺨의 온도가 같아지는 순간.

 

느릿하게 열리는 눈꺼풀 아래 어떤 결심을 마친 눈동자가 에메랄드처럼 쨍하니 빛났다. ‘뱃속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야….’ 한 박자 늦게, 아이작은 ‘다시 한번’ 이해했다. 나비의 날갯짓이 어떻게 태풍을 발생시키는지, 거기서 태어난 바람이 어떻게 인생을 송두리째 에메랄드로 옮겨 놓는지.

 

이제 아이작 콜버트는 돌아갈 수 없다. 마녀에게 이름을 팔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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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콜버트는 웃는다. 그래서 오히려 속내가 시커멓게 느껴질 때가 있다. 걸핏하면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주제에, 본인은 언제나 평이하니까. 뒷짐을 지고 서서 제나가 밀면 미는 대로, 당기면 당기는 대로 따라오니까.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없고, 투정과 어리광의 차이도 모르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어린애처럼 말한 주제에 금세 네가 걱정된다고 속삭이고, 제멋대로 입을 맞춘 다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굴겠다며 떨어져 나간다. ‘구질구질하게 굴지 않는 게 내 최대 장점이잖아.’ 그때 제나는 처음으로 아이작의 단점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 웃는 얼굴이 가장 싫었던 건 단연 열일곱의 여름이다. 졸업 파티, 유려한 음악에 섞인 맹렬한 폭파음과 마침내 호그와트를 파고든 녹색 재해. 난파된 고성에서 ‘좋은 사람’의 형식으로 웃어 보이던 아이작. 그녀는 그 후로도 종종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종종’이라는 표현으론 부족했다. 흑과 백. 단출한 색으로 구성된 얼굴. 입가를 가로지르는 밋밋한 미소 한 겹과 후천적으로 갈고 닦은 선량함. 그 모든 건 제나가 일평생 바라던 적당하고 무던한 거리감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위해 곱씹었던 것 같은데 갈수록 알 수 없어졌다. 이해하고 싶은 것이 자신의 모순이었는지 그 애의 진심이었는지.

 

그래서 그래. ‘네 생각을 너무 오래 했나 봐.’ 너를 생각하는 동안 냄비 속 포도처럼 바짝 졸아든 마음이 뭉덩뭉덩 소리 없이 녹아내렸어. 새까맣게 태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달더라. 그 마음이 딱 한 사람 분량이란 건 술에 취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이상한 일이지. 쉴 틈도 없이 달려왔는데. 대체 어느 틈에 사랑이 시작된 걸까.

 

재회 이후, 그녀는 아이작의 눈을 볼 때마다 하염없이 밤을 헤매는 기분이 들었다. 어딜 가도 온통 그에게 향하는 중이었다. 모든 끝에 그 애가 있었다.

 

너는 내 생각 하지 않아도 돼. 그건 달리 말하면 나는 네 생각을 한다는 뜻이었고, 현재에 집중하는 방법을 모르겠어…. 그것 또한 붙잡아달라는 의미였다. 과거나 미래, 다른 시간 따위는 1초도 생각하지 않을 만큼 꽉. 단단히.

날 좋아한다던가, 가벼운 장난도 버티지 못한 건

 

“이젠 네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이미 마음이 전부 녹아버렸기 때문일 거야.

 

머리카락에 묻어난 형태 부스러진 아침 햇살, 사랑과 두려움을 비로소 같은 가지에 걸어둔 순간.

 

올려다본 얼굴은 초여름을 닮은 듯이 해사하고 선명하게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확신했다. 그의 이름은 반드시 아이작이어야 한다고.⑴ 베어 문 웃음만이 그를 완성했다. 희미하게 달아오른 뺨을 한때 사활을 걸었을 가지 모양의 흉터가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모순이게도 그녀는 그 끝에 걸린 흰 눈동자로부터 겨울을 돌려받았다. 다음을 기다릴 필요 없이 우리 사이 첫눈은 처음부터 여기 있었다. 아침에만 맡을 수 있는 눈 냄새와 사랑 혹은 낭만, 여름만 있는 세계의 크리스마스까지 전부.

 

그래. 삶이 혹한이던 시절이 있었다. 한여름에도 매일매일 사람의 체온이 그리워 여름감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삶이 야속했고, 죽음은 두려웠으며,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 사이 내 몫은 없다고 마음을 접던 나날이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분명히 지나갔다. 이제는 안다. 

 

다시 돌아올지언정.

제나 그레이브스는 더 이상 춥지 않을 것이다. 흰 겨울이, 투명한 거울이, 검은 저주가 녹아내렸으니까.

 

⑴ Isaac. 그가 웃는다. 혹은 그가 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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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러던데.

행복에는 상한선이 있지만, 불행에는 하한선이 없다고.

 

우리 삶의 그래프는 언제나 하향 곡선.

그렇다면 영영 바닥에 닿지 않아.

끝나지 않는 추락을 함께 하자.

 

손을 잡아 줘.

뒤로 두 걸음, 사이드 크로스, 오픈 텔레마크···.

샤세 프롬 피피, 내추럴 턴.

51번째 왈츠에서도.